☞ 인스타그램 영상(IGTV)으로 보기 '기후변화, 먹거리 위기와 농업의 적응'
1. 2024년은 기상 악화로 인한 농산물 가격 폭등이 유난히도 잦은 해였다. 봄철의 일조량 부족, 여름내 길게 이어지는 폭염과 폭우, 짧고 추워진 가을은 채소 및 과일류의 전반적인 생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지난해 작황 부진의 여파로 2024년 3월 기준의 사과 가격은 전년 대비 123.3%가 상승해 개당 5,000원까지 치솟았으며, 8월에는 역대급 폭염과 집중호우로 인한 출하량 급감으로 시금치 가격이 전월 대비 두 배 이상 오른 것을 비롯해 각종 채소와 과일의 가격이 큰 폭으로 뛰었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산물유통정보). 이러한 현상은 김장철을 앞둔 10월까지도 이어져, 김장 주재료인 배추와 무 가격이 전년 대비 50% 이상 비싸진 것으로 나타났다(통계청 소비자물가조사). 이와 같은 농산물 수급의 불안정과 밥상 물가의 상승은 기후변화에 따른 먹거리 위기가 이미 우리의 일상 속으로 침투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식량자급률은 약 49%로 OECD 주요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며, 쌀을 제외한 곡물자급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이상기후에 따른 농업의 위기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수입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식량안보는 더욱 위태로운 상황이다.
2. 이번 데이터 언박싱에서는 KOSSDA가 제공하는 농업 및 농촌과 관련된 자료 중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2022: 도시민; 농업인> 자료와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의 <제주지역 친환경농업 생산자 실태 및 인식조사, 2023> 자료를 집중적으로 활용하여 현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에게 특히 중요한 문제인 먹거리 위기, 즉 식량문제와 지속 가능한 농업의 중요성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오늘날 식량문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을 도시민과 농업인의 입장에서 비교해보고, 농업인들이 이야기하는 최근 농업환경의 변화, 특히 기후변화가 농업에 미치는 피해와 그로 인한 농민들의 어려움을 살펴본다. 그리고 농업이 기후위기에 적응하고 나아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자구책으로서 친환경농업에 대하여 생각해볼 것이다.
3. 기후변화와 먹거리 위기에 대한 인식
눈앞에 다가온 먹거리 위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2022: 도시민> 자료에 따르면 먹거리 소비자인 도시민들이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수준을 우려하는 정도는 ‘10년 전보다 악화되었다’ 19.8%, ‘10년 후 현재보다 악화될 것이다’ 29.7%로 그다지 높지 않다. 반면 ‘그대로(일 것)이다’ 또는 ‘개선되었(될 것이)다’라고 응답한 비율은 10년 전 대비 현재 74.1%, 10년 후 62.6%로, 도시민들은 현재에도 미래에도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수준을 비교적 긍정적/희망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동시에 도시민들은 식량안보에 가장 중요한 위협 요소로서 이미 현재 진행형인 ‘극한 기후 현상(심각한 가뭄, 홍수 등) 및 기후변화’를 1순위(77.5%)로 꼽는 한편, 우리나라가 유지해야 할 적절한 식량자급률 수준을 묻는 질문에는 총 66%의 응답자가 현 수준인 49%보다 높은 ‘50% 이상’의 식량자급률 수준을 선택하고 있다. 또한 ‘식량안보’ 및 ‘식량자급률’이라는 용어의 의미를 실제로 알고 있다고 응답한 도시민의 비율이 각 25.9%와 32.9%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실들을 고려한다면, 위와 같은 도시민들의 식량안보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이들의 식량문제에 대한 낮은 관심도 또는 관련 정보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반면에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2022: 농업인> 자료에서 일선 농업인들이 인식하는 우리나라의 식량안보 수준은 ‘10년 전보다 악화되었다’ 30.0%, ‘10년 후 현재보다 악화될 것이다’ 53.6%로 도시민들보다 훨씬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4. 농업인이 체감하는 기후위기
그럼 우리 먹거리의 생산을 책임지고 있는 농업인들의 목소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들어보기 위해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2022: 도시민; 농업인> 자료를 다시 살펴보자. 도시민들은 농업·농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현재(66.8%)와 미래(61.1%) 모두 ‘안정적 식량 공급’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농업인들은 미래 농업·농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안정적 식량 공급(40.6%)’이 아닌 ‘환경 보전(44.7%)’이라고 답하였으며, 10년 후 한국농업의 미래를 비관적(52.5%)으로 바라보고 있다.
많은 농업인들이 농업소득의 감소(55.4%), 건강과 질병(41.5%), 기후변화와 자연재해(37.5%) 등의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으며, 최근 농업경영의 가장 큰 위협 요소로 농업 생산비의 증가(23.5%), 일손 부족(16.8%),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재배 여건의 변화(11.5%) 등을 지목하고 있다. 특히 농업의 위협 요소와 관련하여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2017: 농업인> 자료를 추가로 살펴보면, 3위로 꼽힌 기후변화 문제의 경우 5년 전인 2017년의 6.9%와 비교해 1.67배나 증가하였는데, 이는 2위인 일손 부족 문제가 2017년 16.6%에서 2022년 16.8%로 0.2%p 증가한 것을 생각하면 아주 큰 증가폭이며, 1위인 농업 생산비의 증가가 2017년 14.0%에서 2022년 23.5%로 1.68배 증가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즉, 우리 농업인들이 농촌의 고질적 문제인 인구감소 및 고령화에 더해 이제는 기후위기라는 농업환경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 새로운 위험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후 패턴의 변화는 실제로 농업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가? 농업인들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관련 체감도를 조사한 <제주지역 친환경농업 생산자 실태 및 인식조사, 2023>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작물 성장 저해 및 생산 불안정성 증가(80.8%)’를 가장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종류의 병해충 증가(77.2%)’, ‘작물 재배의 적정 시기와 적지의 변화(62.4%)’ 등도 심각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농업인 3명 중 1명(37.6%)은 이러한 기후변화 재해에 대해 ‘대응 필요성을 느끼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고 응답하고 있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보장받기 어려운 농업 현실에 대한 농민들의 상실감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수의 농업인들이 농작물 재해 보험에 가입하거나(22.6%), 작물의 활력을 높여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거나(21.0%), 기후변화에 피해가 적은 작목으로 전환할 생각(10.7%)을 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반면 정부와 지자체에 대응 정책을 기대하고 있다고 응답한 농업인은 7.5%에 그쳤는데,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2022: 농업인> 결과에서도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농업·농촌 정책이 만족스럽다고 평가한 농업인은 20.9%에 불과해, 정부 정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69.7%)이 훨씬 높은 수준임이 나타났다.
이와 관련하여 농업인들은 현재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전략이 홍수·가뭄 대비 위주여서 일조량 부족이나 한파·폭염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기후 위험요인에는 적절하게 대비하기 어렵다는 우려와 함께, 온난화에 대비한 기후적응형 품종의 빠른 개발과 보급, 단기적 물가 대응에 치중해 가격할인 및 수입 확대에 의존하는 형태의 농산물 수급 대책에 대한 개선,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 재해를 현실화하는 농작물재해보험의 개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기후위기 대응전략, 정부·농업계 ‘동상이몽’, 농민신문, 2024년 3월 25일).
5. 기후위기와 친환경농업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앞으로 우리의 농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0% 이상이 식량의 생산과 운송, 유통, 소비, 폐기 과정에서 배출된다. 즉, 먹거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부족한 식량을 수입하거나 해외 생산기지를 확보하는 등 식량의 장거리 운송을 수반하는 방안은 또다시 온실가스의 배출을 증가시켜 기후위기와 농업 위기가 더욱 심화되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 농업인들은 기후위기와 농업 위기가 이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이미 잘 인식하고 있는데, <제주지역 친환경농업 생산자 실태 및 인식조사, 2023>에 참여한 농업인의 81.8%가 농업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에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동의하였으며(다소 동의 40.8%+매우 동의 41.0%),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2022: 농업인>의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인 52.2%의 농업인은 탄소중립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농축산물 생산/유통/소비 부문에서 해야 할 역할이 막중하다고 응답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EU는 2019년 농식품분야의 탄소중립 전략인 ‘팜투포크(Farm to Fork)’, 즉 식품공급체계의 친환경화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제주지역 친환경농업 생산자 실태 및 인식조사, 2023>에서 이미 저탄소 친환경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무농약 및 유기농산물 생산자들은 친환경농업이 잡초·병해충의 관리(4.31점), 기후변화 등 생산여건의 악화(4.19점), 높은 생산비용(4.06점), 낮은 출하가격(4.03점) 등의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5점 척도: ①전혀 어렵지 않다~⑤매우 어렵다), 응답자의 66.7%가 기후위기 시대에 친환경농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65.0%가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다면 친환경농업의 어려움을 감수하겠다고 답하였다. 그러나 친환경농업은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는 관행농업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에 더 취약하기 때문에(71.9%), 친환경 농작물의 특성에 맞는 재해보험의 기준을 마련할 필요성이 있으며(85.9%), 친환경 농작물의 재해보험료 지원 또한 확대될 필요가 있다(89.9%)는 의견도 함께 피력하였다.
6. 지금까지 급변하는 기후 상황과 함께 어느새 우리 곁에 다가와 있는 식량위기, 그리고 농업인들이 느끼는 농업의 위기와 그로 인한 고민들을 살펴보았다. 오늘날 기후 패턴의 변화와 기후재난의 일상화라는 농업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는 농업인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국가 차원에서 정책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8월 개최된 ‘기후위기 대안, 농업의 미래: 친환경농업의 활성화를 위한 국회토론회’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농법 변화의 필요성과 한국 친환경농업의 발전과 지속가능성의 확보를 위한 전략 및 지원방안, 데이터 기반을 만들어 가는 과정으로서 친환경농업 연구의 필요성 등이 논의되었다(기후변화 대응한 친환경농업의 패러다임 전환 시급, Farminsight, 2024년 9월 2일). 앞으로 농업 관련 제도의 개선과 소비자 인식 제고, 민관 협력 등을 통해 가속화되는 기후위기 상황에 탄력적으로 적응하는 한편, 농업 분야의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두 가지 매듭을 지혜롭게 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인용서식 : 고지영, 데이터언박싱 : 기후변화, 먹거리 위기와 농업의 적응, KOSSDA newsletter98, 2024년 11월